2016년 2월 26일 금요일

[묵상나눔] 내가 용서를?

 
    (사진: Stowe Mountain Lodge, Stowe, VT)

지난 몇달간 아침 걷기하면서 아침 시간이 부족해  시간을 성경듣기로 대신하다가 요즘 날씨관계로 집안에서 시간 보내 시간이 길어져   소홀해 졌다요즘 블로그를 정리하면서 페이스북에서 나눴던 묵상들을 옮기고 있다그러는 도중에 하나하나 다시 읽어 보니 내가  받은 복이 많았구나 하는 감사가 새삼 든다그래서 오늘 아침 생명의  본문을 찾아 다시 그분의 말씀에 귀기울여 본다.

베드로가 예수께 용서의 문제를 가져 왔다그는 나보다 인자한  같다 같으면 한번 용서도어려운데 " 번까지' 묻고 있다베드로가 그렇게 참을성이 많았었나아니면 율법에 익숙했던그들 문화에새로 오신 '예수의 '이라도 정하려 했던 걸까 숫자까지만 억지로 라도 용서하고 나면  다음엔 아무래도 자유로와 질테니까?

그러나 그는 아직 예수를  모르고 있음은 분명하다그분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절대로!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니…  490 번이나 된다 평생에 내게 490 번씩 용서받아야  짓을 자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종종 듣는 설교에선 이에 대해 뻔한 적용들을 하곤 하지만그래서이미 답을  알고 있어 '이건 내가 어차피 하지도 못 하는거니까하고 넘어가 버리겠지만기왕 오늘 본문이나 한번  짚어도 좋을  하다.

 달란트 빚진 자와  데나리온 빚의 비교를 이야기 중에 끌고 들어 오신 예수님 이미 많이들었어도   금액의 비교를 굳이 하고 싶지 않다어차피 예수님은 어림도 없는 금액으로 비교하셨을테니까... 내가 주께  빚의 크기가 내가 죽을 때까지 어떤 수고를 하여도 절대 갚을  없을 규모라는  주님은 깨닫게 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반면에 내가 남에게 뀌어준 거라야 정말 볼일도 없는 걸 제발 좀 알으렴 하시는 것일 터이다그게 설사 7번씩 70번을  갚는다  그게 코끼리 앞에 비스켓이라는 이야기다.

내가 그런 용서를 받은 자인걸 아느냐고 그분이 내게 묻고 계신 거다내가 깊은 바다 가장 깊은곳에서 주를 만났다면 나의 감사는  바다의 깊이일 것이다 감사는 해수면에서 풍랑처럼 놀아 나는 파도와는 다른 무게감이고 절대 흔들릴  없는 안정일 것이다.

그렇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나에겐 그런  음미하며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다그래서 나에 대한험담 하나에 파르르 떨곤 하는 것이다.

나보다 나를   아는 주님이시라 했나?  그분이 내게 기대하시는게 뭘까맨날 실패하는 삶에서 허구한  통회하고 자복하고 죄인이라고 가슴치는  보고 싶으신 걸까내겐 그런 신앙 생활이 주님을 모독하는  같은 느낌이 드는건  일까어차피 진토와 같은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이내게 던지는 메시지는 '아들아내가  알아그렇게   필요없어용서가 안되면 내게 던지고 너하던 대로 살으렴하시는게 아닐까? ( 18: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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